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동 통번역대학원 2기 박성현입니다. 저는 졸업 후, 서울시청과 농촌진흥청,GM 대우 등에서 통번역사로 있었고, 현재는 한동대 통대에서 8년째 강의하며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소속된 기관과 담당 업무를 소개해주세요.
졸업 후 거의 10년간 주로 서울시청과 농촌진흥청 등 정부기관 통번역사로 일했습니다. 서울시청의 경우 그 당시 영어 통번역사가 7~8명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특별히 서울시 전자정부/정보통신 분야 해외홍보와 통.번역을 담당했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농업기술 연구개발 및 농촌개발을 위한 정부기관인데 국제농업기술센터의 통번역 및 의전을 담당했습니다.
Q.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거나 통번역사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나요? 특별한 에피소드도 좋습니다.
졸업시험이 끝난 직후 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인생의 목표가 무었이냐는 것이었어요..20대 중반이었던 저는 민간기업의 대표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아주 이상하고 센스없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여기 지원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익에 기여하고 싶다.’ 이런 류의 답변을 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주로 정부/공공기관이 제 성향에 맞았나봅니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최근 2-3년간 독도와 북한관련 번역을 주로 하게 되었는데, 민감한 사안이나 어려운 내용이 많아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끝나고 나서 너무 보람이 있었고, 공익과 특히 나라를 위해 작은 부분이나마 기여하게 되어 정말 보람이 있었습니다.
Q.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저는 전공에 있어서 정말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원래 이과라 생명공학(및 전산부전공) 쪽을 공부하다 우연히 듣게 된 언어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국제어문(국제커뮤니케이션 및 지역학)으로 과를 바꾸었지만, 학부를 졸업 할 때 즈음 다시 틀어 의학대학원을 준비하려 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즉흥적(음…직관적?..이라고 해두죠)인 사람인가 봅니다.
학부 졸업 후, 우연히 교회에서 외국인 성도를 위해 통역을 부탁받았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통번역 대학원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진학을 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보니, 이런 방황이 오히려 득이 되어서, 과학기술 분야 통번역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대학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학원 2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현직통번역사로 바쁘시게 일하시던 한 교수님께서 시간을 내어 학생들을 응원하시려 내려오셨는데, 교수님과 학생들이 포항 해수욕장에 놀러가서 갑작스럽게 물놀이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쁘시간을 쪼개서 내려오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Q. 자신만의 언어/통역/번역 공부법이 있을까요?
저는 실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딕테이션을 합니다. 강연이나, 뉴스 등을 전사하고 나서 그 밑에 통역 어투로 번역을 하면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나 긴장 관리 방법은, 이 일이나 과제가 끝나고서 찾아올 잠깐의 여유나 휴식을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냅니다. 저는 3-4개월 단위의 긴 번역과제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끝나고 나서 1-2주 정도 푹 쉬거나 여행을 다녀오는데, 열심히 일한 후 찾아오는 달콤한 순간이 저에게는 스트레스 극복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Q. 재학 중인 후배나 한동대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인 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대학교 2학년때, 진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할 때, 팀 교수님께서 저에게 평생 도움이 되었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를때는, 딱 두가지만 해. 영어와 영성.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길을 가든지, 이 두가지 일은 인생의 밑거름이 될거야.”.. 진로와 학업에 있어 고민으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대신, 차라리 잡생각^^을 다 지우고, 영어와 말씀과 기도에 힘쓴다면 어떤 길을 가든 기본이 잘 다져진 사람이 됩니다. 그 길이 우리 통대로 이어진다면 더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