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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학생활동 > 활동 후기 > [합격수기] 최진 (한영통번역학과 5기)

 제목 | [합격수기] 최진 (한영통번역학과 5기)
 작성자 | Nathan 작성일  | 2009/10/29 12:10 am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은 제가 합격수기를 쓰려니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사시는 분이 통번역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그래서 제 글이 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싶어 글을 씁니다.

 

2003 4월부터 영어사랑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통번역에 대해 점차 알게 됐습니다. 졸업한지는 한참 되고 직장생활도 5년 가까이 한 제가 30을 넘어 30대 중반이 다 되가는 나이에 갑자기 하던 것 다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데에는 이것을 해야만 나중에 내가 뭘 하더라도 (설사 통번역사가 못된다고 해도)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분명치 않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가길 원하던 학교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은 지금은 그때의 느낌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에 캐나다에서 3년 정도 유학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토플점수가 고득점이라는 이유 하나로 캐나다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학의 학부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잘 아시다시피 외국의 학부나 대학원과정에서 공부해보면 유학생 가운데 그렇게 높은 토플점수를 받은 학생 치고 발표 한번도 못하고 공부 못 따라가서 버벅거리는 학생은 한국 학생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저는 Social Science계열을 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어의 장벽 때문에 공부를 도저히 못해 낼 거라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싶은 공부라는 이유하나로 무조건 밀어붙였습니다. 아무리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어떻게 그런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실력으로 (간단한 회화 좀 하고 토플문제 패턴에만 익숙해있던 제가)그 힘든 학부과정을 해내려고 했는지 지금 되돌아봐도 그 용기 하나는 참 가상했다고 생각합니다. 첫해엔 우선 살아남는 게 목표였습니다. 너무 힘들어 숨쉬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꼈지만 친절하신 교수님과 조교선생님들이 자상하게 잘 가르쳐주셔서 2년째로 겨우 올라갈 수는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요령도 생겼고 악으로 깡으로 공부를 해대니 장학생들이 받는 학점에 근접할 만큼 성적도 올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2년 넘게 공부하다보니 제가 하는 공부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실력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어떤 공부라도 모래 위에 세우는 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탑을 아무리 공들여 쌓는다고 해도 그때엔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언제 허물어질지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다간 졸업장 하나만 달랑 얻을 뿐 유학오기 전 제가 꿈꾸었던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유능한 인재'가 되겠다던 계획은 물 건너갈 거라고 판단하고 과감히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때 마침 IMF가 터져서 되돌아올 구실도 생겼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가르치는 직업이었는데 동종의 타 직장에 비해 근무조건과 급여조건이 월등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내지 않고 중도하차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지금은 제 여건상 일을 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공부하겠다는 열망은 계속 맘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공부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기 쉽습니다. 일단 충분한 고정수입이 생기게되면 불필요한 소비습관에 젖어들게 되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싶고,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하면 공부는(특히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하는 것 같은 힘든 공부는) 점점 딴 세상의 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런 생활에 너무 물들어버리면 이 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싶어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했습니다. 주위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면서 사람들과도 필요이상의 만남은 가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사 그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는다고 해도 멀어져만 갈 것 같은 내 꿈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나중을 위해 소비도 절제해야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머리가 굳어지는 게 싫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학을 해서 경영을 전공했습니다. 이 곳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전혀 몰랐던 경영에 대해 배우는 것도 좋았고 (이젠 선물과 옵션의 차이에 대해 안답니다 ^^) 공부할 시기를 놓쳤지만 학사모를 쓰겠다는 열정으로 살림하며 직장생활하며 열심히 사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이 제겐 신선한 충격이었고 자극이 되었습니다. 혹시 통번역대학원에 관심은 있는데 학사학위가 없어 고민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방송통신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거나 편입학하셔서 공부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등록금도 맘에 쏙 들게 저렴하고 커리큘럼도 아주 훌륭하게 잘 짜여져 있어 다른 일을 하면서 영어실력도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직장 생활중 우연히 아는 분으로부터 통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공부를 하고는 싶었지만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결정을 못했고 영어를 좋아하니 그것과 관계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통번역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수집하면서 관심은 더욱 커졌고 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직장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사랑에서 2003 4월부터 은천성 선생님의 시사청취반과 통대준비기초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공부분량이 엄청나 벅찼지만, 다시 이렇게 공부만 하고 살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 공부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유학시절에 맘 고생하면서 했던 것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꽤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제일 큰 수확은 듣기가 확실히 늘었다는 것입니다. 유학 때보다도 훨씬 늘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TV볼 때 CNN을 제일 즐겨보고 내가 이런 것도 알아듣는다는 게 (물론 100%는 아닙니다만) 흐뭇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 공부할 때 봤던 앵커나 기자들이 나오면 '! 저 아저씨 또 나왔네"하며 더 열심히 봐집니다. 그 해 9월부터 살인적인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공부할 때 적절한 break를 가져야 하는데 욕심만 앞서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걸 소화하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고 봅니다. 한약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머리가 말끔하지 못했고 혹 내가 뇌종양에 걸린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땐 시험기간이라 다 힘들어할 때였고 수업은 절대로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사청취수업을 듣다보니 매니아가 되어버려 아무리 몸이 아파 복습을 못해도 일단 수업은 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거의 결석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청취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결석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게 제 생활의 작은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사청취 수업에 너무 빠져 장홍석 선생님 수업을 한번도 듣지 못한 게 애석합니다. 주위 분들 말로는 다정하고 잘 가르쳐주시는 큰  오빠 같다고 하던데... 시험을 보러 갈 때도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갔지만 나는 최선을 다 했으니 결과는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004년도는 제게 turning point의 시기입니다. 변화가 많았던 만큼 고통도 많았고, 이 해에도 공부는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공부에 그리 많이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한 목사 사모님을 만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동대학교를 알게되었고 그곳의 통역번역대학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에서 제가 바라는 최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께서 설교통역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볼 것을 권고하셨는데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통역사로서의 기본적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듣기는 어느 정도 향상됐지만 도저히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고, 설사 다 알아들었다고 해도 두려움이 생겨 말이 입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말한다고 누가 날 죽이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한번 해보자."라고 결심하고 한동대학만을 목표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한동대는 기독교 대학이니 교회나 성당 다니는 분들은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고 타종교를 가지거나 무신론자라도 종교선택의 강요는 없으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학교가 소수정예의 원칙을 가지고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정도를 벗어나 친자식처럼 알뜰하게 돌봐주신다는 점이 맘에 들었습니다. 스스로 혼자서 공부해내기를 요구하고 그게 잘 안되면 다른 잘하는 학생들에게 가려서 교수님의 기본적인 관심조차 못 받는 곳과 내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돌봐주시고 1:1로 도움을 받아가며 공부할 수 있는 곳과는 나중의 결과가 엄청날 거라고 생각했고 통역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저도 한번 해 볼만하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한동대는 일반 타 대학보다 훌륭하시고 실력 있는 교수진을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전 지금 설교통역을 공부하겠다고 목표는 세웠지만 그 부분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신앙심이 그리 깊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지만 의무적이고 습관적이었습니다. 한 때는 삐딱하게 나가서 믿는 이들은 다 위선자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소리내어 기도할 때도 결코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성경구절을 찾을 때도 한참을 걸려야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설교통역을 해야만 제가 행복할 거라는 내면의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일단은 이것을 목표로 공부할 생각입니다.

 

2004년도엔 그룹스터디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혼자 공부하며 기초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003년도에 그룹스터드를 하며 느낀 점은 여럿이 같이 공부하면 시너지가 발산되어 혼자서 공부할 때보다 훨씬 많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단계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이지, 기초가 부족한 실력 즉, 임계질량에 도달하지 못하는 실력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그룹스터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실력향상보단 기교향상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실력은 갖추지 않은 채 기교 부리기에만 급급 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임계질량을 쌓은 뒤엔 그룹스터디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아직 임계질량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2004년도엔 수업도 그리 많이 듣지 않았습니다. 수업내용을 다 빨아들이기엔 부족함이 많다고 판단했고 2003년도에 열심히 배웠던 것을 더 철저히 복습하면서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도는 느리겠지만 그것이 실력향상에는 최고가 아닐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은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강조하시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내용을 들었을 때 idea잡기, 독해력과 논리력을 길러내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공부는 결코 단시일내에 이루어낼 수 없고, 그 과정이 더 힘들 수도 있지만 이왕 성인이 되어 공부를 한다면 그런 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는 것만 받아먹고 단편적인 지식만 머리에 꽉 차있는 공부는 중고등학교시절에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사실 은 선생님이 제시하시는 공부방식은 제가 캐나다에 있을 때 교수님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것입니다. 그 곳은 report를 쓸 때도 짜집기는 물론, 어디서 베껴서 사실들만 나열하면 절대로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학생들의 통찰력을 요구합니다. 즉 생각하는 힘이겠죠. Social Science계열은 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땐 이런 식의 공부가 정말 죽을 맛이었고, 사실 지금도 저는 생각하는 힘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압니다. 어떤 공부든 독해력과 논리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한다면 그 사람은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설사 공부에 관계되는 게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보다 업무성취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가끔씩 은 선생님 수업시간엔 제가 유학시절에 외국인 교수님으로부터 한국말로 강의를 듣는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선생님이 독해력, 논리력을 강조하고, idea잡아내는 걸 말씀하실 때입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사설학원에서 얼마나 많은 강사분들이 그런 방향으로 수업을 이끌어나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공부의 중요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단계에는 한참 못 미칩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 혹 향상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동대학교와 시험에 대한 설명은 다른 합격자분이 너무 잘 하셔서 반복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2차 시험에서 면접을 볼 때 느꼈던 점은 교수님들께서 기본적인 영어실력도 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지원동기와 가치관이라고 생각됩니다. 미리 제출한 자기 소개서에 대해 날카롭고 예리하게 질문하십니다. 저는 10가지 정도의 질문을 받았는데 모두가 제 경험과 판단, 그리고 평소의 생각과 관련된 것이라 담담하게 버벅거리지 않고 잘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습관이 된 사람말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영어로 이뤄졌는데 통역보다 회화에 더 강한 저는 이 부분이 제일 자신 있었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교수님들이 다 고개를 끄덕끄덕하시고 웃기까지도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서 좋았는데 한영 영한 테스트로 넘어가기 전 이미 '합격이다!'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기 전까진 절대 확신할 수 없었고 한영 영한에서는 많이 당황하고 버벅대기도 했기 때문에 발표가 날 때까지 맘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것은 하늘이 정하시는 것이고 나는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 보면 제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한결같다는 게 뭔지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제가 존경하는 은 선생님께 그 동안의 가르침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제게 따끔한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며 지식보다는 지혜를 강조하셨던 저의 spiritual mentor이신 사모님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공부하니까 힘들다고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 사주고 위로해주던 친구 수연이와 은주에게도 감사합니다. 둘 다 좋은 남자 만나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습니다. 2003년도에 같이 공부하면서 많이 가르쳐주고 같이 밥 먹고 수다 떨고 그리운 시간을 많이 보냈던 스터디 멤버들 현화, 연순, 정은양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지만 항상 절 위해 기도해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을 때, 이 작가는 인생의 비밀에 대해 뭔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이가 간절히 소망하는 게 있으면 온 우주가 협력하여 그를 도와준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만약 그 간절한 소망이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고 남들보다 잘 나기 위해 가지는 소망이라면 온 우주에 있는 만물의 정기는 그 사람을 외면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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